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 통신사 (문단 편집) === 기록화 내 닭도둑 묘사 논란 === [[파일:15f7501f61313590f.png]] 1748년경 와타나베 젠우에몬이 조선 통신사가 요도 번(현대 [[교토]]의 [[후시미]]구 일대)을 방문한 것을 묘사한 민화를 그렸고, 그것이 2004년 교토에서 다시 발굴되었다. 근데 그중 한 장면이 문제가 되었는데, 통신사 두 명이 닭을 들고 있고 주변 일본인들이 어지럽게 모여 있는데 몇몇 일본인들이 뭔가 싸우는 듯한 동작을 보인 것이다. 따라서 발굴 당시에 "조선 통신사가 닭을 훔치는 것을 보고 주변의 일본인들이 제지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통신사는 닭 도둑질이나 하는 한심한 사신들이었다"라는 주장이 [[인조이재팬]] 등지에서 제기되었다. 반면 닭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특히 우측에 죽도(?)를 든 일본 서민을 단순히 칼싸움놀이로 해석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을 묘사한 것이며, 그 사이를 우연히 근처에서 날뛰는 닭을 잡은 통신사가 지나갔던 것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최초 발견 당시 관련자 등은 이 해석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사는 도둑질이나 하는 한심한 사신들이었다' 라는 말은 지나친 것이지만, 통신사를 수행하는 조선인들의 기강이 문란했던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가령 1682년에 역관으로서 일본에 다녀와 사행록을 남긴 홍우재와 김지남은 조선 측이 빌미를 제공하여 일본인과 싸움을 벌이는 적이 많음을 개탄하기도 했다. 가령 홍우재의 『동사록』 1682년 7월 1일조에는 '우리 일행 중의 하인배들이 금령을 지키지 않고 함부로 출입하다가 왜인과 싸우는 일이 있었는데, 그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으니 마음 아프기가 이를 수 없었다.' 라는 부분이 있고, 같은 해 9월 25일조에도 '우리 측의 병졸이 대마도주의 행렬을 범하여 그들이 이를 책망하며 말에서 내리라고 하니 그 병졸이 군중(軍中)의 행렬에 있어서 범(犯)한 것이 없다고 하여 서로 말다툼하다가 심지어는 서로 때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피차에 함께 죄를 조사한 후 대마도주의 행렬은 앞서거나 뒤에 서도록 하여 우리 행렬과 더불어 혼란되어 뒤섞이는 폐단이 없도록 했다.' 라는 구절이 있다. 1763년의 정사였던 조엄은 아예 출발하기 이전부터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을 한문뿐 아니라 한글로까지 써서 수행원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조선 통신사와 관련한 영상들의 일본인들은 여전히 위 민화를 근거로 주장하며 조선 통신사를 '''닭 도둑 조공 사절'''로 여기려 들고 있다.[* 근데 조공 사절이 상국의 닭을 훔치고 민폐를 끼치는 데 별 항의를 안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것들이 베스트 댓글[* 일본어로 업로드된, 조선 통신사를 재현한 행렬에 ''''조선은 당시 휘어진 칼(곡도)을 만드는 기술조차 없었다''''는 황당한 댓글들이 공감을 얻는 판이다. 조선 [[환도]]의 역사를 조금만 알아도 이런 소리는 할 수 없다.]이다. 그러나 이런 면모들은 조선 통신사에 관심 갖는 일본인들이 대체적으로 통신사를 어떤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시 한번 유의해야 할 점은, 통신사의 기강에 대한 지적은 있고 그것이 닭을 훔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닭을 훔쳤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별다른 근거도 없이 저 그림보고 '훔치는 장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 [* 애초에 닭을 훔친다는 해석 자체가 힘든게 뭐 물론 조선통신사가 아무리 대접 잘받았다 하더라도 사신 수행원들까지 항상 전부 그리 잘먹이고 호사스럽게 대접했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사절단이 받은 대접을 보면 일부로 남의 나라에 가서 소란 일으키는거 자체가 목적인 어지간한 싸이코가 아닌한 뭔놈의 닭한마리 아쉬워서 민가에 행패를 부린다는거 자체가 상상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런 건 전근대적 사절단에서 별난 것도 아니다. 청나라와 조선 사절단 사이 하인들끼리 난투극이 나도 오늘날과 다르게 그냥 윗선끼리 "아랫것들이 그렇지 뭐 허허" 넘길 수준으로 취급되었다. 조선 통신사의 성격에 대한 논란의 뿌리는 조선 통신사를 '조공 사절'로 공식적으로 폄하하려 들었던 일본 측의 변함 없는 거만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수차례 기록에 나오듯, 아무리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들어섰다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숭상하는 신사에 일부러 통신사를 머물게 해 골탕먹이려 하는 등 도저히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과거를 들춰내며 미화하고 있는데, [[아메노모리 호슈|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며 "다 끝난 일을 왜 들춰내냐" 며 화를 내고 있었다]]. 착각하지 말자, '''임진왜란은 "다 끝난 일"이 아니며, 진짜 다 끝난 일이면 역사왜곡하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